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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예시] 수필 개인 연습작 - 조화(造花)

블로그하는봉봉 2019. 6. 22. 14:23

조화(造花)

시멘트 위에 핀 꽃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마음이 답답하면 옥상에 올라가길 좋아한다. 옥상이라는 울타리 너머로 세상을 내려다보면,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넋이 나간 채 전우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병사처럼 서 있는다. 그때 병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중학교 때 나는 예고에 진학하고 싶었다.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는 지금의 나도 모르겠지만 남들 앞에 서고 싶었다. 발표 시간만 되면 거나하게 술에 취한 듯 불그스레 볼이 달아올라 연신 손부채질을 하던 내가 말이다. 그래서 더욱 동경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남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개그를 하던 재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해보지 못한 꿈이라는 녀석은 마음 한편에서 무전취식을 하며 점점 커져만 갔고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녀석은 결국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남대문만 한 학원 선생님 방 앞에서 녀석이 용기를 냈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 보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말에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공부하기 싫지?”라고 하셨다. 맞다, 계산기 속 부품 만들 듯 같은 모양을 한 우리가 정답만 바라는 공부가 싫었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창과 방패를 들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답지를 받고 나면 옆자리 친구가 울던 게 싫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혓바닥 언저리에서 꿀꺽 삼켜 버렸다. 그저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잘못 포장될까 싶었던 것이다. 부모님과 상담해보겠으니 수업을 들으러 가라는 말을 뒤로하고 가방을 챙겼다. 시계를 보니 9시가 조금 안 됐었다. 수업 시작을 기다리는 친구들의 눈 밑 그림자가 늘어져있었다. 시계추는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학원 선생님과 통화를 마친 부모님이 방문을 두드리셨다. 어머니의 눈엔 슬픔이 가득했다. 돌연 공부를 포기하고 연예인이 되겠다는 큰아들에 대한 걱정이었으리라.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뺨에 슬픔이 흐르자 들숨과 함께 감정을 삼키고는 공부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했다.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와 작은 손가락 두 개를 마주 걸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공부하리라 약속했다.

 

카디건을 걸치고서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열었다. 시멘트 바닥과 벽에는 예쁘게 그려놓은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하지만 향을 품지는 못했다. 멀리서 보기엔 좋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차디찬, 향이 없는 꽃이었다. 소설 속 옥상 위 민들레꽃의 주인공처럼 멍하니 꽃을 바라보았다. 주인공이 바라보던 세상에서 조금은 더 나아졌을까? 아니 오히려 퍽퍽해진 것 같다. 씁쓸한 기분이 들어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쳤다.

 

피곤을 떨치려고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 앞에 서니 조용한 정적이 나를 반겨주었다. 문을 열고 보니 옥상에서 보았던 꽃들이 교실에 가득했다. 색색이 화려하지만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꽃들, 바로 우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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